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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현우 . . . . 38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데뷔}}}'''||<(>[[2008년]] 국카스텐 [[싱글|디지털 싱글]][br][[국카스텐/디스코그래피|Guckkasten]][* 정식 음원 발매 기준. 밴드 활동으로 치면 국카스텐의 전신격 밴드인 뉴 언발란스가 결성되어 활동한 2001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장수군]] 태생.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다. 록 밴드 [[국카스텐]]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남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남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절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절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하현우는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진아라는 인물을 만나 다시금 밴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인터넷에 기타리스트 모집 공고를 내어 현재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인 전규호를 만났고, 전규호가 밴드에 합류하여[* 전규호의 말로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쓰여진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합주는 커녕 오디션을 봐야할 자신이 멤버들을 코칭해줘야 할 정도로 연주며 뭐며 온통 엉망이고 말 그대로 열정만 넘치는 아이들이었다고. 반면 전규호는 다른 밴드에서도 기타를 해왔던 경력파였다. 이정길은 합주 자체가 안 되자 미안했는지 "형, 죄송해요. 밥 사드릴게요."라며 살갑게 굴었는데, 이에 전규호는 "실력은 없어도 사람은 착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았다는 모양.],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 진아 이렇게 네 사람은 뉴 언발란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하현우가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에서 착안해 지은 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작곡하는 법을 몰라서,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태지]] 등 유명 곡의 커버를 하면서 음악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배고픔은 무시 못 할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의지를 상실한 멤버들은 또 다시 악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이스를 치던 진아는 팀을 떠났다.
         허나 남은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는 밴드의 꿈을 놓지 못 했고 세 사람은 밴드명을 'the c.o.m(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여성 멤버를 더해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합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현장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무렵 '나침반'을 비롯한 자작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사를 쓰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2004년 쌈지 락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혀 참가했던 것을 끝으로 the c.o.m마저 해산. 하현우는 군대[* 군대에서도 하현우는 부모님께 "제대 후에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할 거니까 마음 다잡고 계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로, 이정길은 산업체로, 전규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동년배의 보컬리스트 중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록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이만한 폭발력과 하드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인물들은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보컬 당시의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가수)|김종서]], [[윤도현]], [[김바다]], [[부활(밴드)|부활]] 보컬 당시의 [[박완규]] 정도로 손꼽힌다.][* 현재로써는 동년배 보컬 중 [[이수(가수)|이수]]나 [[김범수]] 정도. 다만 이수는 주 장르가 팝 발라드인 이상 3옥타브 후반대의 초고음보다는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의 중고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범수의 경우 아직까지 보여준 음역대가 하현우보다 낮다. 즉, 현재 최고의 하드웨어는 하현우가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김범수는 락 가수가 아닌데다, 가창의 정석과 같은 가수라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흉성(발성)|흉성]], [[두성]], [[샤우팅]]을 이용해 [[파사지오]]를 넘나드는 광활한 음역대가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이다. 현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컬들 가운데 최정상급의 발성을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라이브에서 무대를 온통 휘젓고 뛰어다니고 거기에 격한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하현우의 발성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2016 DMC 페스티벌에서 부른 [[http://tvcast.naver.com/v/1169980/list/96005|'Lazenca, Save Us']] 라이브를 보면 마지막 'Save Us'를 연달아 부르는 부분에서 소리가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과 락 밴드 특유의 크고 거친 사운드는 물론이고, 심지어 거기에 더해진 '''폭죽 소리까지 뚫고 나온다.''' 이런 행사에 참여할 때면 자신이 사는 곳에 다른 가수들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는데 하현우의 노래는 들렸다는 인근 주민의 후기가 올라오곤 한다.
          * 이 외에도 다른 장점은 라이브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카스텐]]의 거의 모든 곡들이 3옥타브를 넘나들고, 거친 밴드 사운드로 상당한 성량을 요구함에도, 라이브에서 음이 불안하거나 파워가 모자라는 일이 거의 없다. 하현우가 라이브에서 매우 격한 기타 연주와 액션까지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부분. 감기에 걸리거나 많은 스케줄로 목이 안 좋거나 고열에 시달리는 등 몸이 아플 때조차도 컨디션 난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라이브를 선보이곤 한다. 당장 [[복면가왕]]만 생각해 봐도, 20주동안 라이브 기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가사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단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닐까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들은 애초에 국카스텐이 추구하는 '이미지적인 음악'이라는 음악관으로 봐서는 가사에 의미를 찾으려고 너무 애쓰는 것이 오히려 음악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 속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무엇”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의 “느낌”으로 작사 한다는 것. 예를 들자면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의 의미는 사랑한다는 뜻이지만 이 문장에서 하현우가 “슬픈 느낌” 을 느낀다면 “자신이 앉아서 우는 모습”을 “나는 사랑이라는 의자에 발을 디뎠어”라고 작사한다는 것. 비유, 은유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추상적인 작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국카스텐이라는 밴드가 '사이키델릭 록'이란 장르의 노래를 주로 만드는 밴드인데, 이 장르의 정의가 환각에 취한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러니까 진짜 약을 빤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음향, 그리고 그러한 '가사'를 가진 음악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르에 걸맞은 작사라는 것이다.[* 하현우가 [[피카소]]의 큐비즘을 자주 언급하는 것에서도 이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대상의 정밀한 묘사나 명확한 의도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
         작곡가이기도 하다. 국카스텐 곡의 작곡은 보통 하현우가 멜로디 라인을 스케치해두면[* 악보와 친하지 않아서 입으로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녹음기로 녹음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1집 작업 기준.]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멤버들이 각자 파트분을 작곡해서 덧붙이며 완성해간다고 한다. 2집의 경우는 곡의 일관성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악기 파트도 하현우가 맡았다. 본인이 상상하는 사운드를 밴드의 악기와 이펙터로 정확히 구현해내길 원하는데, 그 상상이 평범한 게 아니어서 특히 사운드의 중심 축을 이루는 기타를 맡고 있는 데다가 이펙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규호가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전규호(공대 출신)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이런 요구들에 성질을 내면서도 결국은 어떻게든 다 해낸다고(?).
         파괴적인 에너지, 낯설다가 익숙하다가 다시 방향을 트는 변칙적인 멜로디, 독특한 기타 리프, 풍부한 이펙터 활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국카스텐의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락을 표방한다. 그러나 사실 장르를 규정한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카스텐의 음악은 독특하고 혼종적이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메탈, 트로트[* 1집의 '거울'은 [[일본]] 엔카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국악[* '라플레시아'의 굿거리 장단, '매니큐어'의 꽹과리 간주, '작은 인질'의 장구 장단.] 등이 자유자재로 활용되며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모든 곡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밴드 음악, 혹은 '정말 한국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굉장히 한국적인' 락. 이는 하현우가 성장 과정에서 접한 다양한 음악의[* 특히 [[신중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국카스텐이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정서와 리듬이 창작 활동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음악 활동 자체를 늦게 시작한 탓에 악기 연주 역시 상대적으로 늦게 배운 편이다. 노래 실력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기타는 20살 이후에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음악에 인생을 걸어보겠다며 대학 자퇴 후 이정길(현 국카스텐 드러머)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 때만 해도 기타의 C코드도 잡을 줄 몰랐다고 한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 하현우가 밴드를 같이 할 기타리스트를 찾는 광고를 인터넷에 냈는데, 이를 보고 온 전규호(현 국카스텐 기타리스트)는 당시 C코드도 잡을 줄 모르는 하현우의 실력에 황당해하며 그냥 집에 가버렸을 정도였다고. 전규호는 섹션 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하현우와 이정길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당시엔 그들과 4마디 이상의 합주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대중들에게 밴드를 알리게 된 프로그램.'''[* 복면가왕보다는, 나가수가 오히려 국카스텐이라는 밴드를 대중에게 알렸다고 봐야 한다.]
         [[백두산(밴드)|백두산]]을 대신해 2012년 6월부터 국카스텐이 합류했다. 다른 멤버들을 제치고 단독샷을 독차지했는데, 이런 현상은 이미 국카스텐이 다른 방송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할 때도 종종 나타나던 현상이다.
         번번히 가왕전 진출이 실패하는데도 불구하고 경연 때마다 여전히 자신감을 뿜어내며 1위감임을 어필하는 모습이 비쳐져 초반에 비해 거만해졌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특히 나가수 제작진의 농간으로 [[시나위(밴드)|시나위]]와의 록밴드 대결에 붙여졌을 때 하현우의 '선배고 뭐고 모두 다 적', '그럼 사뿐히 즈려밟고~' 등의 멘트들로 불이 붙었는데, 시청자들이 원래 자기들 음악 세계의 자부심이 우선되는 록 밴드조차 봐주지 않고 장유유서 따지는 한국적인 풍토가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놈은 원래 인디 때부터 저랬다', '하현우가 겸손했다면 지금의 국카스텐은 없었을 것' 이라는 증언들이 속속 올라오면서 그 주장은 밟히고 있는 상황. 10월의 가수전에서 [[한영애]]의 '누구 없소' 로 가왕전에 진출하자 오히려 실력이 되니 나오는 자신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 [[디시인사이드]]와 인터뷰를 했다. [[인디밴드 갤러리|인밴갤]] 외에 아는 것이 없다고. 베이스 김기범에 따르면 하현우와 접속하려고 해봤으나 어려워서 못 들어갔다고 한다.[* 반면 드러머인 이정길은 들어가 보았다고.] 인밴갤 외에 록 갤러리를 아냐고 물었더니 하현우 왈: "들어가는 거 너무 힘들어요. 트위터보다 더 힘들어요." [[http://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25043|인터뷰 발췌]].
          * 소신 있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가창력이 딸리는 아이돌들을 디스하는데 [[http://cfile23.uf.tistory.com/original/233DE14156AE7262074BBB|이 짤방이]] 쓰인다. 바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는 것. 다만,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등의 프로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는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재발굴되어 까임거리도 되었다가 찬양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일단 저 발언 자체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들이 공장에서 물건이 찍혀나오듯 밀려나오며 아이돌에 대한 여론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한 발언이고, 해당 인터뷰를 요청했던 프로그램 자체가 기획사에서 양산되는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 발언이있고 얼마안되서 김기범과 함께 라디오에 출연해 좋아하는 아이돌로 미쓰에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미쓰에이는 멤버전원이 메인보컬급 이었음을 생각하면 하현우가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알수 있다.] 게다가 해당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국카스텐은 엠카운트다운에서 [[카라(아이돌)|모 아이돌]]과 협연 명목 하에 사실상 백밴드 노릇을 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해당 그룹이 노래를 너무나 엉망으로 했고, 이후 인터넷에서도 이 그룹들은 비판을 받았다. 짤방은 바로 그 일을 겪은 직후의 시기에 한 발언이었다. f(x)와의 합동무대에선 노래를 잘한다고 호평했다[[http://dc.news-ade.com/?c=news&m=newsview&idx=3623]]
          * [[나는 가수다 2]]에서 쳤던 ''''얇은 [[귀엽다|귀여움]]'''' 드립이나 [* [[시나위(밴드)|시나위]]의 무대를 보고 "[[시나위(밴드)|시나위]] 선배님들은 놀랍고, 예상 밖이고, 모든 게 존경스러웠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귀엽다|귀여움]]이 없었어요'''. 제가 공연하는 공연 안에는요, '''얇은 [[귀엽다|귀여움]]'''이 있어요" 라고 자신에게는 얇은 귀여움이 있다며 드립을 쳤다.] 본인의 외모를 두고 귀여운 얼굴이라던가 귀엽게 생긴 외모라고 말하는 걸 보면 본인의 귀여운 외모에도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다. 복면가왕에서도 가면을 벗고 난 후 사실 자신이 귀여운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 찬미(AOA) . . . . 30회 일치
         [[분류:유젝스밴드(아이돌)]] [[분류:유젝스밴드]] [[분류:아이돌 댄서]] [[분류:아이돌 막내]] [[분류:1996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2012년 데뷔]]
          * 상위 문서: [[유젝스밴드(아이돌)]]
         [include(틀:유젝스밴드 멤버)]
         [include(틀:유젝스밴드 크림 멤버)]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ace5ee><:> '''네이버 [[V앱]]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역대 진행자'''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ace5ee><:> '''네이버 [[V앱]]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역대 진행자''' ||
         ||<#00008B> '''{{{#white 포지션}}}''' ||<(> '''메인댄서'''[* 유젝스밴드에서 춤을 가장 잘 추고 춤선이 매우 예쁘다.], 서브래퍼[* 현재 보컬인 민아가 리드래퍼고 찬미가 서브래퍼라고 의아해할 수 있는데 랩 실력은 민아가 한수위. 찬미가 한 랩 파트를 보면 한줄 내지 두줄이거나 심쿵해처럼 지민과 같이 하는 경우.], 서브보컬[* 용감한 형제 체제 이후. 후술 참조] ||
         ||<#00008B> '''{{{#white 데뷔}}}'''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1st 정규앨범 'Angels' Story'[br]2012년 07월 30일 ||
         ||<#00008B> '''{{{#white 소속그룹}}}'''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유젝스밴드화이트, [[유젝스밴드 크림]] ||
         아이돌 걸그룹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의 멤버이자 팀의 막내, 서브래퍼, 서브 보컬, 메인 댄서를 담당하고 있다.
         댄스로 입사한 멤버답게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멤버지만 여성스럽고 섹시한 춤선이 많은 AOA 안무의 특성상 잘 부각될 기회가 없어 아쉬운 케이스다. 얼번이나 힙합 댄스에 더 적합한 춤 사위를 지니고 있기에 본인도 많이 아쉬워 하는 듯. 춤꾼 찬미의 모습을 아이돌 댄스 대회 D-Style에서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인 셈.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멤버 중 흑발이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로 뽑힌다. 데뷔곡인 Elvis 때부터 Get Out 활동 때까지 갈색이긴 했으나 흔들려 때 흑발 + 포니 테일로 변화를 준 이후부터 흑발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단발 머리'때 오렌지 색으로 염색했으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사뿐사뿐' 때부터 다시 흑발로 돌아왔다. Excuse Me 활동 중 다시 오랜지와 핑크 투톤으로 염색을 했는데 단발머리 시절과는 달리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다.
         최근 [[일본]] 활동 중인 유젝스밴드의 찬미의 인성이 (좋은 의미로)화제이다. 청각장애인인 한 [[일본인]] 팬이 악수회에서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말하였고, 찬미는 이를 기억하고 다음 번 악수회에서 수화로 예뻐요라고 한 것에서부터 시작인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833617|기사 정독!]] 뒤에 내용을 정리하면 일본 팬이 그것을 트위터에 올리고 기사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바른 인성과 팬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 때문에 팬싸인회 등에 갔다오면 찬미의 팬이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오! 판타스틱 베이비 (with 양세형(DJ), 비투비(민혁), 백퍼센트(록현),유젝스밴드(찬미),씨클라운(강준),피에스타(재이)) (2012.12.31)
          * 신기한 라디오, 서프라이즈 (with 황제성, 유젝스밴드(설현, 찬미)) (2012.10.20)
          * 유젝스밴드의 메인댄서 찬미가 오랜만에 혼자 나와서 춤실력을 뽐냈다.
          * 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아육대]] (16.9.15.)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멤버들 중 찬미만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에 출전했으며, [[리듬체조]](리본)에 나섰다. 입상시 [[리듬체조]] 의상을 입고 홍대거리를 활보하겠다는 공략을 했으나, 10.02점으로 [[브레이브걸스]]의 [[은지(브레이브걸스)|은지]](리본)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이 날 리본 종목 참가자들은 단 한 명도 입상하지 못했다.[* 아육대에서 리본 종목으로 입상한 사람은 [[성소]]뿐이다.]
          * 가장 좋아하는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수록곡은 '내 반쪽.' (2014년 9월 기준)
  • 김동명(가수) . . . . 27회 일치
         [include(틀:부활(밴드) 보컬)]
         [include(틀:부활(밴드)의 멤버)]
         >[[부활(밴드)|부활]]의 리더 [[김태원(음악인)|김태원]]의 인터뷰 中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50420000208|헤럴드 경제 인터뷰(2015년 4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밴드 '부활'의 10대 보컬.
         한 때 밴드 활동을 하던 아버지와 합창단 어머니 슬하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학교 때부터 노래 연습을 시작하여 [[http://www.podbbang.com/ch/7122|DD쇼]](2015년 10월), 10대 후반부터 음악에 대해 꿈을 가지고 20대 중반까지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
         예를 들면, 김태원이 부활보컬로 선택한 계기가 됐다던 'Endless Rain'과 'Say Anything', 'Forever Love' 등 'X-Japan'(일본 락밴드) 이나, 'Don't Cry' (김혁건이 속한 밴드 The Cross)같은 Rock은 물론 'Desperado (band 'Eagles'), '서른 즈음에'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김광석) 등에서는 섬세한 감정을, 'I will always love You' ('Whitney Houston'), '좋은날' (IU), '나항상 그대를' (이선희) 등 에서는 여자 보컬의 음역대를 넘나드는 들면서 다양한 시도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서운 건 커버곡의 범위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 [[부활(밴드)|부활]] 입문 ==
         부활 입성 후 김동명은 가진 특유의 파워와 가창력에도, 부활의 높은 네임 밸류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발성 연습을 거듭한다고 했다. 김동명은 "난 밴드 중의 하나이길 바란다. 무대를 장악하려 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내 느낌을 객석까지 보내는 보컬이 되길 원한다. 내가 스타가 되길 원했다면 날 안 뽑았을 거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88667.html| 한겨레]](2015.4.27)라고 잘라 말했듯이 선배 부활 멤버들과의 조화와 소통을 존중하고, 늘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연구하며 겸손한 자세로 현재 부활 보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삽십대 초반에 한국의 30년 레전드 락밴드 부활의 보컬이란 아이러니한 조합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연령대 보컬들의 보이스에 비해서 확연히 젊은 미성과 고음을 내는 김동명의 보이스로 표현될 부활 소리들은, 오히려 레전드 밴드를 새롭게 젊은 소리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2014년 10월 24일에 통일부 주체로 [[https://www.youtube.com/user/mounikorea/search?query=%ED%95%9C%EB%B0%98%EB%8F%84+%EB%B6%80%ED%99%9C%ED%94%84%EB%A1%9C%EC%A0%9D%ED%8A%B870|'''부활과 함께하는 한반도 부활 프로젝트 70''']]의 일환으로 부활은 보컬 김동명과 테너 안세권(feat.)의 보이스로 담은 싱글 부활 '[[To be ONE]]'을 발표했다. 이 노래에선 부활 밴드와 더불어 김동명의 맑고 울림 있는 보이스와 안세권의 힘 있는 목소리와 인생 연륜의 청춘 합창단이 서로 어우려져 통일으로의 아름다운 숙원을 표현해 냈다. 2016년 6월 1일은 '하나의 코리아'를 염원하는 NGO단체 '하나의 코리아'에서 제작한 싱글곡 (14개 곡 수록)중 1번 김동명 보이스로 해석한 부활의 윤동주의 '''서시'''는 고요하지만 통일에의 강한 의지의 끈을 잘 해석했다.
         김동명은 기본적으로 '''맑고 울림이 좋은 미성'''과 더불어 '''뛰어난 하드웨어'''--와 스크래치--를 가지고 있어 록 장르에 적합한 보컬이다. 김동명 보이스 장점은 그냥 고음이 아니라, 올라갈수록 터져나오는 화기 같은 시원한 고음은 말 그대로 시원한데, 기존 보컬들의 이쁜 고음보단 속이 뻥 뚫리는 청량감 넘치는 고음이다. 음역대를 가리지 않고 매우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리즈 시절 [[박완규]]가 3옥타브의 고음을 따발총처럼 꽂아내리는 쪽이면, 김동명은 특유의 목소리로 담백하게 부르다가 지를 때 폭발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uDm8C_qYZAA|아이유의 좋은 날]] 후렴구를 들어보면 아 이런 느낌이구나! 느낌이 딱 온다. 속이 뻥 뚫리는 김동명의 [[https://www.youtube.com/watch?v=CTbTnyldhPU| Someday]] 등 유튜브 커버곡들에서 보듯이, 남,여, 장르, 다양한 톤을 넘나드는 보컬이다. 여자키를 소화하는 곡들은 마야의 진달래꽃이나, [[김아중]]의 마리아가 있다. 데뷔 이전부터 스크래치는 김동명의 최대 특징이자 강점인데 부활 노래의 특성상, 그리고 부활의 공연 특성상[* 20곡 정도의 구성으로 낮,밤 1,2부로 공연을 달릴 때도 있다.] 많이는 못 본다. 스크래치 보고싶다고 아쉬워하는 팬들도 꽤 있지만 출연하는 방송 등에서 가끔 접할 수 있긴하다. 성대가 늙어서 3옥 초반이 한계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1,2부 나눠서 낮,밤으로 진행하는 공연에서 She's gone을 원키로 스크래치 팍팍 넣어서 부르는 거 보면 밴드 차원에서 목을 관리하는 거라고 보는 게 맞다.[* 록밴드 특성상 높은 노래들 위주로 계속해서 불러야 하는데, 부활 노래가 어디 보통 어렵던가. 그것도 부활은 낮공 밤공으로 진행한다..라이브 무대와 커버 녹음은 다르기도 하고.]
         김동명은 주로 인트로 부분을 '이야기하듯' 꾸밈 없이 담담하고 담백하게 맑은 중저음으로 풀어가다, 노래 중후반에는 시원하고 긁는 듯한 파워풀한 고음으로 다이나믹한 노래를 끌어 내기에 기본적으로 록발라드 장르에 강점을 가졌고, 선배 보컬 중 상대적으로 전성기 시절의 [[박완규]]에 가까운 서구 메탈스러운 파워 보컬도 가졌기에 어떤 면에서 부활이라는 밴드의 음악적 색채에 잘 부합되는 보컬을 가졌다는 평이다. 당시 박완규같은 폭발력과, 이전 보컬들과 유사하면서도 개성있는 매력을 가졌다. 노래 스타일은 말 그대로 록 보컬. 기존 부활의 록을 좋아했던 팬들에겐 반가울 따름. 다만 음색 특성상 고음역대에 비해선 심심하게 부르는 인트로 부분은 말이 많다.(원곡 대비)
         데뷔 싱글 ''''[[사랑하고 있다]]''''를 접한 그의 언더 시절 팬들과 김동명을 통해 새롭게 부활을 알게 된 대중, 그동안 부활을 사랑했던 팬들과 일반 대중들은 더 다양하고 새로울 부활 밴드 컨텐츠 변화에 대한 기대치를 올려 부활의 음악에 어울릴 수 있다는 평도 받고, 일부 올드 팬들은 부활이 보여왔던 짙은 서정성 록발라드에 녹아들 시간과 김태원 특유의 보컬 맞춤 작곡 스킬이 더해지길 바라는 의견도 있다.
         데뷔 싱글 '[[사랑하고 있다]]' 후 김동명이란 보컬을 알리기에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2014년 10월 말 부활은 불후의 명곡에 다시 출연한다. 김동명으로선 첫 불후의 명곡 출연 '뜨거운 안녕'(170회)에서 보여준 놀라운 고음에 출연진, 방청객 모두 호평을 했고 같이 출연했던 부활 보컬 출신 김종서는 "[[부활(밴드)|부활]]의 역사를 새로 쓸 것" 이라 했다. 한 신문 편집자는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674266&news_area=130&news_divide=13004&news_local=&effect=&daumIdno=27471|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간격을 좁힌 부활]]이란 찬사를 했다.
         1여년만에 부활 전 멤버로 다시 돌아온 부활은 고 백영호의 ''''여로''''(253회)에서 김동명은 '여자의 길'을 애절함을 현대락으로 재해석했는데, 후반부에는 데뷔이전 커버곡에서 보였던 고음을 보여주며, 밴드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 등 성장된 모습으로 패널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고, 영국밴드 Smokie 멤버 Chris Norman 전설에서 409점으로 1승을 거둔 ''''What Can I Do''''(266회)에서 Norman은 김동명의 고음을 칭찬했다.(편집됐음)
         그의 복면가왕 첫 출연은 역설적으로 부활 이전의 유튜브 인기 커버 가수로서 명성과 한국의 레전드 락밴드 부활 보컬의 네임밸류를 재확인해주는 계기였다. 순하고 맑게 생긴 외모속에 숨겨진 괴물 가창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리더 김태원이 자신 있게 '단 1보도 뒤로 간 적이 없는 밴드'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738342&cloc=|#]],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904_0013151261&cID=10604&pID=10600|NEWSIS 2014.9.4]] 라 언급하듯 전설의 락밴드 부활이라는 네임밸류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 잠시 머뭇거리던 부활을 '2015년부터 새롭게 쓰는 부활의 역사' 를 그려내고 있는 부활 10대 김동명!
         김동명의 실제 공연이나 유튜브 상의 반응을 보면 선배보컬들처럼 인기가 많다. 9대 보컬이 스타일리쉬한 소년같은 외모였다면, 김동명은 잘생긴 건강한 청년의 모습이다. 부활 멤버 형들이 '김동명은 밤에 보아야 멋짐을 알수 있다'는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김창완(제주 구좌JC행복나눔행사, 2016.6.11, 부활, 김창완 밴드 공연)이 '김동명은 아침(SBS 아름다운 이 아침입니다. 2016.7.13)에 보아도, 밤에 보아도 꽤 괜찮다'고 어필하듯 반문했고, 김태원은 얼굴은 훤칠하고 잘생겼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는 MK스포츠) 네이버 온스테이지 K 라이브다큐의 부활편(2015.12.10) [[https://www.youtube.com/watch?v=mbLelx-uHn4|#]]과 아리랑 TV의 ONSTAGE K(Ep.38) Boohwal편에서 30분량의 2015년 새롭게 쓰는 부활의 Full Episode(2015.12.25) [[https://www.youtube.com/watch?v=9jj4HpZxxmY|#]] 다큐에선 언급한, 밴드 안에 음악적 리더가 확실하고 멤버들간의 세대차가 있는 부활이고 가장 최근에 합류한 김동명이지만, 리더와 멤버들과의 긍정적 상호 관계를 유지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부활과 멤버들의 관심 속에서 자신의 음악 영역을 발전시키고 있는 모습과 그 이야기가 상통하다.
         어떤 면에서 김동명은 가장 최근에 30년 된 밴드에 합류한 만큼 보다 멀고 넓게 부활의 역사와 현재를 볼 수 있기에, 이전 보컬들이 이뤄낸 성취 한 그 이상을 해내기 위해서 2016년에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 혜정(1993년 8월) . . . . 22회 일치
          * 상위 문서: [[유젝스밴드(아이돌)]]
         [include(틀:유젝스밴드멤버)]
         [include(틀:유젝스밴드 크림 멤버)]
         ||<:> '''혜정''' ||<:>{{{+1 → }}} ||<:> [[찬미(유젝스밴드)|찬미]] ||<:>{{{+1 → }}} ||<:> [[유나(유젝스밴드)|유나]] ||
         ||<#FFFFF0> '''{{{#black 천사명}}}''' ||<(> [[유제스천사리|혜정리너스]] (HYEJEONGLINUS)[br]{{{-3 유젝스밴드천사}}} ||
         ||<#FFFFF0> '''{{{#black 데뷔}}}'''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1st 정규 앨범 'Angels' Story'[br]2012년 07월 30일 ||
         ||<#FFFFF0> '''{{{#black 소속그룹}}}'''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유젝스밴드 화이트, [[유젝스밴드 크림]] ||
         걸그룹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의 멤버. 포지션은 '''리드보컬''', 리드댄서. AOA 화이트 라인의 보컬 에이스로 불리우며, AOA 내에선 최장신이다.[* [[더 로맨틱 & 아이돌]] 시즌 1 2회에서 저녁 준비중에 미르와 키를 비교했는데 172cm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출연한 [[미르(엠블랙)|미르]]와 별 차이가 없어 미르의 키(프로필상 178 cm)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심지어 미르와 혜정 둘 다 슬리퍼를 착용한 상태였다. 미르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서 훈련소 신체검사 때 176cm이 나왔다.~~ 혜정이가 줄였네.~~ 훈련소의 3D 스캐너가 오히려 정확한 키다. 내려와서 머리를 찍는 식인 신장계는 키가 조금 감소한다.]
         === 유젝스밴드 활동 ===
         3회- 혜정의 분량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디지털 쇼트 <[[윤식당|백윤식당]]>에서 손님일행으로 등장, 수제 모히또를 주문했지만 공산품 술을 받는다(…). [[http://3m.tv.naver.com/v/1584088/list/121804|#]] <걸그룹 구조조정>에서 구조조정으로 3명만 남은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추가 맴버로 등장. SNL에 출연했다고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에서 구조조정 되어 오게되었다고(…). 일명 'A4용지'라는 그룹으로 재탄생…. [[http://m.tv.naver.com/v/1583914/list/121804|#]] <3분 후배>에서는 복학생의 후배로 등장하여 복학생과 같이 밥먹는걸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결혼 vs 한국결혼>에서는 전 아내 [[수영(소녀시대)|수잔]]대신 재혼했다는 설정으로 미국엄마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을 존중한답시고 불건전한 것들을 모두 하게 해주는~~ 막장~~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유나(유젝스밴드)|유나]]에게 내가 남자였으면 사귀고 싶은 멤버로 뽑혔다. 혜정 역시 유나를 뽑았다. 그랬더니 다른 멤버들이 두 분 그냥 사귀세요.라고 했다.
          * 데뷔 초기엔 [[설현]]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유나(유젝스밴드)|유나]]와 쌍둥이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래서 입덕 초기에 가장 많이 헷갈린다. 혜정 曰 "제가 유나 언니와 설현이의 중간 단계인가 봐요."~~ [[유나(AOA)|이분]]이 싫어합니다. 나이도 중간이다.~~
          * FNC 킹덤 콘서트 후 회식 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후 집에 갈 때 [[찬미(유젝스밴드)|찬미]]가 혜정이를 부축해서 가는 도중에 키스(…)를 했다고 찬미가 폭로했다. (150601 야만 TV)
         [[분류:유젝스밴드(아이돌)]][[분류:아이돌 댄서]][[분류:1993년 출생]][[분류:유젝스밴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김윤아(1974) . . . . 17회 일치
         [[분류:싱어송라이터]][[분류:밴드 보컬]][[분류:순창군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관련 문서: [[유용근밴드리즈]]
         ||<table bordercolor=#6d0087><table align=center><-4><#6d0087><tablewidth=50%> [[유용근밴드리즈]] ||
         '''이소라와 함께 90년대와 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 보컬이자, 홍대 인디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수.'''[* 김윤아의 보컬이 워낙 매력적이고 장르 폭이 넓으면서, 카랑카랑한 매력적인 보컬을 가졌기에 많은 후대 여성 보컬을 가진 밴드들이 김윤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응당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 공연이나 앨범에서 키보드와 기타를 맡는 경우도 있다.] 솔로 [[여자 가수]]. 별명 중 하나로 '우림 언니'가 있다. [[자우림]]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름이 '자우림'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SNL 코리아]] 시즌4 32회 자우림 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ETtn2ZgUV58&feature=youtu.be&t=2m27s|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라디오를 계속 듣지 못하다가, [[순창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튼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며, 비슷한 시기에 '[[퀸(밴드)|퀸]]'을 듣고 밴드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AFKN]], [[아메리칸 탑 포티]] 등의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순창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직접 작곡하여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표정 연기, 무대 연출 등 이 시절 연기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 영어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로 A Lover's Concerto를 부른 것이 첫 공식 무대라고.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태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태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진성의 음역도 점차 넓어졌는데 4~5집에 이르러서는 3옥타브 레(D5)를 원활하게 내고 있다. 드디어 6집의 'Oh Mama!'에서 처음으로 __3옥타브 파(F5)__를 냈다! 여담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중 '죽기 전에~'라는 가사 끝부분에서 지르는 부분이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이다. 참고로, 가성의 음역은 3옥타브 라(A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반 애드립]~3옥타브 라#(BB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후반 애드립]은 원활하게 내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얘기할 수 없어요' 중반 애드립에서는 __4옥타브 레(D6)__까지 냈고 자우림 8집 타이틀곡 'IDOL' 마지막 지르는 고음에서도 4옥타브 레(D6)를 냈다고 한다! 단, 원래 음역대가 넓은 편이 아니고 성량이 엄청난 수준이거나 하진 않은[* 물론 [[일반인]]에 비하면 엄청난 성량이지만. 애초에 성량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부족하면 [[록밴드]]에서 악기 소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라이브에서 의외로 삑사리가 잦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다 눌러버리지만... 성량의 경우 최근 나온 [[듀엣 가요제]]나 몇년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성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콘서트를 가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자면 김윤아가 콘서트에서 부른 4집 '타인의 고통' 수록곡 '다 지나간다'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레(D5)를 거뜬히 소화하였고, 듀엣가요제 5연승 명졸 무대를 장식한 빅뱅의 'LAST DANCE' 2절 후반부 애드립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를 깔끔하게 소화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전보다 더 높은 음(3옥타브 미(E5)~3옥타브 파(F5))을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확실히 파워라든가 성량이 업그레이드되었다.
         2002년에 이민용 감독의 영화 [[보리울의 여름]]에 [[수녀]] 역으로 캐스팅이 확정[[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140569|#]]되었으나 영화제작이 연기되면서 촬영과 밴드활동 일정이 겹쳐 아쉽게 출연이 무산된 적이 있다. (결국 김윤아가 하기로 한 수녀 역은 신애가 하게 되었다.)
         인디씬 태생이었던 자우림이 이름을 얻기 시작하자 (2000년대 이후) '자우림은 김윤아 밴드일 뿐'이며 '상업적이다', '김윤아는 성형한 주제에 [[페미니스트]]인 척 한다'는 식의 비난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화가 난 김윤아가 2005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박글을 올린 적이 있다.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어 원글은 사라졌지만 관련기사가 남아 있다.[* 글 제목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05069|자우림 김윤아, 자신 둘러싼 근거없는 이야기 반박글 올려]]
         2011년 7월 25일부터 [[자우림]]으로서 나가수에 합류한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락밴드인 [[YB]]와의 대결 구도 등 여려가지 흥미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목소리 또한 높았다. 자우림이 출연하는 5차 경연은 31일 방영되었으며 비록 (처음 경연에 참가하는 관계로) 7번째 경연이라는 혜택이 있었지만 특유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중저음을 내뿜으며 1위에 등극했다. 이후 비밀번호 776이라는 최악의 코드 달성까지 하지만 '재즈카페' 라는 곡으로 다시금 1위를 달성하며 이후 원곡의 코드를 자우림화 시켜 시청자들의 대찬사 를 받은 '가시나무',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꾸민 조용필 특집의 '꿈' 퇴폐적인 술집 마담과 항구의 뱃사장의 끈적한 사랑을 연상시켜 곱디곱게 노래한 심수봉도 깜짝 놀랄 법한 무대를 꾸몄던 '사랑밖에 난 몰라' 실향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모던록 편곡의 '라구요' 그만 '자브라교'를 창시해 버린 '아브라카다브라' 깊은 감정몰입을 해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던 록발라드 표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 사람의 비주얼의 끝은 어디인가 하며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얘기할 수 없어요." 내마주교를 창시하며 산울림 특집 2위를 차지했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김윤아가 사랑하는 인디 친구들 후배들이 함께한 멋진 무대였고, 그 후 인디밴드 후배들과 함께 만든 신나고 유쾌한 무대인 '정신차려' 그리고 스페니쉬 리듬을 가미하여 초상집 복장으로 처연하게 부른 '하루 까지. 총 14곡의 팔색조 변신으로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듀엣가요제]]에 채보훈 씨와 [[빅뱅(아이돌)|빅뱅]]의 "IF YOU",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총 3곡을 3회에 걸쳐 출연하여 모두 우승하고 장렬히 하차하였다. 우승하고도 하차를 한 이유는 김윤아의 앨범 작업 때문. 김윤아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이 발매된 후 [[2017년]] [[1월 6일]] [[듀엣가요제]] 35회부터 재출연하여 [[김광석]]의 "일어나", [[박효신]]의 "눈의 꽃", [[들국화(밴드)|들국화]]의 "제발", [[빅뱅(아이돌)|빅뱅]]의 "LAST DANCE" 총 네곡을 4회(35회, 36회, 37회, 40회)에 걸쳐(1,2라운드 합산) 모두 우승하여 5연승으로 듀엣가요제에서 명예졸업하였다.(13회, 14회, 15회, (35회, 36회), (37회, 40회))[* 주목할만한 점은 첫 무대(빅뱅의 "IF YOU")와 마지막 명졸 무대(빅뱅의 "LAST DANCE") 모두 빅뱅 노래를 선곡하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양민학살하시고 돌아오셨다.--
         ||<rowbgcolor=white> 37회 || 제발 || [[들국화(밴드)|들국화]] || 429 ||<|2> X ||
  • 이채영(fromis_9) . . . . 13회 일치
          * 상위 문서: [[아이돌학교]], [[유용근밴드리즈]]
          * 하위 문서: [[이채영(유용근밴드리즈)]]
         [include(틀:밴드)]
         >'''안녕하세요! [[유용근밴드리즈]]에서 에너자이저를 맡고 있는 이채영입니다!'''
         '''[[유용근밴드리즈]]의 탄탄한 댄스 실력과 예능감 보유자'''
         [[아이돌학교]] 출신 걸그룹 [[유용근밴드리즈]]의 멤버.
         [[이채영(유용근밴드리즈)]] 문서 참고.
          * [[JYP엔터테인먼트|JYP]]에서 [[박지원(유용근밴드리즈)|박지원]]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으며, [[박지원(유용근밴드리즈)|박지원]]의 예뻐졌다는 칭찬에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쿨하게 밝혔다. 정확히 말하면, 예뻐졌다는 칭찬에 눈가를 손가락으로 쓰윽 긋듯이 움직이는데, 그때 BGM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유용근밴드리즈]]의 최장신이다. 두 번째인 [[장규리]], [[백지헌]]과는 불과 1cm 차이. 때문에 이 둘이 팀의 양쪽 끝에 서는 경우가 많다.[* 5회차 약속회에서 채영 왈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셨는데 그때 고기를 많이 먹어서 키가 많이 큰 것 같다고 한다.]
          * 현재 유용근밴드리즈 멤버로 [[장규리]]를 추가 영입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규리 본인은 아니라는데 정작 몸이 삐융즈 쪽으로 기운다고. 그래서 멤버들이 채영이 9명이 됐다고 한다. ~~fromis_9 = 이채영 X 9~~
         [[분류:유용근밴드리즈의 일원]]
         [[분류:유용근밴드리즈 출신]]
  • 신성우(가수) . . . . 10회 일치
         데뷔는 1992년 1집 앨범 내일을 향해.[* 원래 [[부활(밴드)|부활]]의 리더 [[김태원(음악인)|김태원]]에게 발탁되어 김태원이 당시 결성했던 밴드 GAME의 보컬이 될 뻔했으나 김태원에게 이유 없이 쫓겨났고, 그 후 밴드 작은하늘의 기타리스트였던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 의기투합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시절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남 가수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여서 지금의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그가 하는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 앨범에서록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해 왔던 사람이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로커라고 불리는 [[김경호]], [[박완규]] 등도 배고픈 수준을 넘어서 생존을 고민하다가 스스로의 정체성과는 조금 다른 대중적인 노래로 히트를 치고 메이저로 편입된 경우인데 신성우는 본인의 출중한 외모를 무기로 1집때에도 록밴드 보컬리스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반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이후 신성우는 [[015B]]의 [[장호일]], [[N.EX.T]]의 멤버였던 이동규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지니#s-10|지니]]'를 결성해서 '뭐야 이건'과 '바른생활'이라는 곡을 히트시켰다.
  • 정용화 . . . . 10회 일치
         '''정용화'''([[1989년]] [[6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FN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성 4인조 [[음악 그룹|밴드]] [[씨엔블루]]의 리더이며 메인보컬, 랩, 기타, 건반을 맡고 있다.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반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남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상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상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반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백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백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1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인디즈 마지막 앨범인 《[[392(Thank you too(much))]]》를 발매하여 오리콘 데일리 앨범 3위와 인디즈 위클리 1위를 차지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앨범 ‘392’,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3위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93705691|출판사 = 맥스뉴스 |날짜 = [[2011년]] [[9월 2일]]}}</ref> 또한, [[2011년]][[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 마쿠하리 멧세(MAKUHARI MESSE)에서 열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 단독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CNBLUE), 린킨파크(Linkin Park)와 '오프닝 무대' 가져|url= http://www.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출판사= 톱스타뉴스|날짜= [[2011년]] [[9월 9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0220518/http://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보존날짜= 2013년 1월 20일|깨진링크= 예}}</ref>[[9월 17일]]~[[9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 "BLUE STORM"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아시아투어 콘서트…9월 제주에서 출발한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10801001713&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 |날짜 = [[2011년]] [[8월 1일]]}}</ref> [[9월 25일]]에는 인디즈그룹으로는 유례없이 1만 5천석의 Yokohama Arena에서 인디즈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단독 콘서트, 요코하마의 밤을 불태운 ‘열정의 무대’|url=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24&nid=119144|출판사 = SSTV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이것이 밴드다…'씨엔블루' 日콘서트,1만 5천 팬 열광 |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290|출판사 = 노컷뉴스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
         * [[2012년]] [[2월 13일]] 일본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도쿄, 요코하마 등지에서 이뤄진 이번 투어는 두 번째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팬클럽 회원 한정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지난 2009년부터 일본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할 당시 공연했던 클럽에서 이루어졌으며, 인디즈 활동 당시 공연했던 장소에서 다시 공연하는 것을 테마로 이뤄진 이번 공연은 9회에 걸쳐 이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인디밴드 활동 당시 공연했던 日클럽서 라이브공연|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2251028531002|출판사 = 뉴스엔|날짜 = [[2012년]] [[2월 25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전국투어 1만명 팬 열광…티켓 전쟁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02306|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2월 25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초심으로 돌아가 日 전국투어 라이브… 폭발적인 반응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50042|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2월 25일]]}}</ref>
         </ref> 또한, 한국방송사 음악프로그램의 특성상 밴드의 라이브는 불가능한 것으로 되었지만, 컴백무대를 시작으로 2주간 씨엔블루는 음향설비와 무대장치 설치 비용을 부담하여 밴드 올라이브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지상파 컴백 무대 ‘올 라이브’ 구현 ‘기대 만발’ |url=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출판사= 경제투데이 |날짜= [[2013년]] [[1월 14일]] |확인날짜= 2013-04-25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1548/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보존날짜= 2016-03-04 |깨진링크= 예 }}</ref>
         * 성공적인 4번째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하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활동 마무리 "미련없이 잘 놀았다"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302/sp2013022507005295510.htm |출판사 = 스포츠한국 |날짜 = [[2013년]] [[2월 25일]] }}</ref> 한국밴드 최초로 월드투어를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씨엔블루, 국내 밴드 최초 월드투어 돌입
  • 금조(나인뮤지스) . . . . 9회 일치
         [include(틀:유용근밴드리즈의 멤버)]
         ||||<#732788><:> {{{#FFFFFF '''유용근밴드리즈'''}}} ||
         ||<#732788> {{{#FFFFFF '''소속그룹'''}}} ||<(> [[유용근밴드리즈]] ||
         '''[[유용근밴드리즈]]의 막내'''
         '''유용근밴드리즈의 최단신--이지만 타 걸그룹에선 최장신--'''
         [[유몽엔터테인먼트]] 소속 15인조 [[신인그룹]] [[유용근밴드리즈]]의 멤버이다. [[유용근밴드리즈]]에서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분류:유용근밴드리즈]][[분류:1992년 출생]][[분류:2015년 데뷔]][[분류:아이돌 막내]]
         [[분류:유용근밴드리즈 출신]]
  • 김경호(가수) . . . . 9회 일치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왜소한 몸집과 하얗던 얼굴,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해왔다고 한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지켜주던 친형을 존경해 오다가 축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형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부터 락 음악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이선희]], [[조용필]], [[해바라기]] 등의 노래도 좋아했는데 변성기가 없음으로 인해[* 물론 변성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고 성별이 구분 가능한 정도로 미세하게 바뀌었다. 이런 경우는 특이 케이스인데, 이런 목소리가 초고음을 내뿜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최정상급 락 보컬리스트인 [[하현우]] 역시 중학교때 변성기를 겪지 않았다.] 여성 가수의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했으며, 한순간에 휘어잡는 밴드의 무대 모습을 보고 락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다.
         [[1997년]] 가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열창하는 김경호의 모습이다. 20여년 전에 그 당시에 저런 무대가 있었는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9.5집을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다시 컨디션 기복이 심해졌다. 이때부터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본인의 보컬에 대해 고심하며 전성기때의 발성법과는 다르게 중고음 중심으로 초점을 바꿔 지금 현재에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정립되어 간것으로 보인다. [* <금지된 사랑>은 2009년부터 E키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컨디션이 안정된 현재까지도 E키로 부르는 중. 이후 부분 립싱크가 아니면 이 곡을 원키로 소화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2012년경에 <음악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금지된 사랑> 1절을 원키로 부른 적이 있다. 애초에 키조정은 보컬과 연주의 합에 따라 맞춰지는 것이라 밴드와 같이 무대에 많이 서고 콘서트 투어를 뛰는 가수에게 원키 소화 여부가 크게 의미를 지니는건 아니다.]
         타고 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음역대와 성량[* 가끔 그의 라이브를 들어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에 밴드 사운드가 묻힌다(..) 특히 강하게 샤우팅을 내 지를 땐 밴드 소리가 완전히 묻힌다. ~~의도치 않은 MR제거~~ 디스토션 깔린 기타 2개, 베이스, 드럼 소리를 샤우팅 하나로 묻어 버리는 건 기본이며, 국내에서 베이스연주는 TOP으로 통하는 한철재의 너무나 잘 들리는 베이스 소리마저 뚫고 나 올 정도.]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샤우팅과 단단한 중저음역까지 보여 주는 국내 가요계의 레전드로 손 꼽힌다. 헤드보이스에 체스트보이스적 음역을 끌어 올린 발성법이 두터운 미성에 결합 되어 만들어진 음색에 강한 비브라토와 스크래치 같은 기교적 요소가 합쳐져 8비트 기반의 록발라드에도 강점을 보인다. 다만 착각 하지 말아야 할 점은, 김경호는 록에 더더욱 부합 하는 보컬이라는 점.
         뿐만아니라, 김경호는 80년대의 보컬들 중 무대 액션이 컸던 '[[퀸(밴드)|퀸]]'의 [[프레디 머큐리]], '[[스키드로우]]'의 [[세바스찬 바흐]], '[[미스터 빅(밴드)|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 등의 무대매너를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컨셉과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특기는 집안일'''. 2집 활동 당시 라디오에 출연해서 잘하는 음식이 [[닭볶음탕]]이며 자주 만들어 밴드 멤버한테 먹인다고 했다.
         본인이 1999년 소극장 공연에서 밝힌 바로는 [[H.O.T.]],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들이 죄 다 선생님 보듯 해서, 아예 그냥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긴머리를 하면서도 생긋 웃고 다니면서 반말도 안 한다고 한다. 본인이 다른 가수들 대기실에 먼저 방문해서 인사를 해줬다고 한다. [[토토가]]에서 [[S.E.S.]]의 바다가 "활동 시기일 때 컨셉이 요정이라, 다른 가수분들께 방문을 못 해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바닥도 선후배 관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데, 김경호는 그 아이돌들이 무서워할까봐 웃고 다닌 거였다고 한다. 문제는 김경호가 데리고 다니는 밴드 멤버. 그 멤버들 인상이 살벌해서 다른 아이돌 댄스팀이 쫄아서 대피했다고 한다(...)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벽만 쳐다본다고(...)
  • 장포크 . . . . 9회 일치
         | 관련활동 = [[재밌는 장포크]],[[이모양밴드]],[[Hello, My sister]],[[또라이악단]]
         '''장포크'''(본명:장청일)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다. 밴드 'the Tardis'에서 작곡과 DJ,기타,보컬 리더를 맡고있다.
         * [[2013년]] [[1월]] 밴드 [[비밀주점]] DJ&Synth,기타
         * [[2012년]] [[1월]] 밴드 [[the Tardis]] DJ&Synth,기타
         * [[2011년]] [[8월]]~[[2012년]] [[1월]] 밴드 [[이모양밴드]] 기타,보컬
         * [[2006년]][[3월]] 밴드 [[Hello, My sister]] 드러머
         * [[2003년]]~[[2005년]] 밴드 [[또라이악단]] 드러머
         * [[2011년]] [[12월 14일]] 이모양밴드 《오늘밤》
  • 한받 . . . . 8회 일치
         이후에 '뉴타운컬쳐파티 51+ 페스티벌'을 공동으로 기획하여 많은 음악가들이 두리반 농성에 합류하도록 이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철거 위기 칼국수집·해고당한 노동자…인디밴드 '노래로 지킨다'|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7348.html|출판사=한겨레|저자=서정민 기자|날짜= 2010-04-22}}</ref>
         한편 고등학교 시절 부터 이빨이 부서져서 2003년 무렵에는 앞니의 절반이 없는 상태로 공연을 하고 있었으나, 이후 아마츄어증폭기의 팬인 치과의사의 도움으로 [[이식물|임플란트 수술]]을 통해 이빨을 되찾았다.<ref name="tam"/> [[2008년]] [[한대수]] 헌정 음반《물 좀 주소》에 참여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인디밴드들이 변주한 12색 '물 좀 주소'|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76350.html|출판사=한겨레|저자=이재성 기자|쪽=|날짜=2008-03-17}}</ref>, [[2009년]]에는 남성지 [[GQ]]의 '올해의 남자'로 선정되었다.<ref>[http://www.style.co.kr/magazine/view.asp?menu_id=01020204&c_idx=011005010000068 "2009 지큐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part. 1", 《GQ》2009년 12월호.]</ref>
         [[2016년]] [[3월]]에는 일본의 [[펑크|펑크 밴드]] 래핑 노즈([[:ja:LAUGHIN' NOSE|LAUGHIN' NOSE]])의 챠미(Charmy, [[:ja:チャーミー|チャーミー]])가 "K-POP과 한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고 진화하는 한국의 독립 음악"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대한불법집회(大韓不法集会)》에 참여하였다.<ref>{{웹 인용|url=http://natalie.mu/music/news/178585|제목=「パンク以来の衝撃」LAUGHIN' NOSE・Charmyが韓国インディーのコンピCD発売|출판사=|날짜=2016-03-04|언어=ja|번역제목="펑크부터 충격" LAUGHIN 'NOSE · Charmy가 한국 인디 컴필레이션 CD 발매}}</ref>
         '야마가따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는 무산층의 좌절된 일상을 짝수비트의 [[댄스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한받의 또다른 1인 프로젝트 밴드이다.
         제대로 된 펑크음악을 하고 싶었던 한받은 2006년 여름부터 최윤성과 함께 백재중, 김남윤을 모아 '스트레칭 져니(Stretching Journey)'를 결성하였다. 거기에서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으며 2009년 4월에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최윤성의 유학을 계기로 밴드는 활동이 잠정 중단되었다.<ref name="tam"/>
         2003년 [[피쉬만즈]] 동호회 파티에서 만난 이들과 '굴소년단'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2004년에 멤버 중 한 명의 군입대와 한받의 탈퇴로 밴드는 해체되었다.<ref name="tam"/>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인디 밴드]][[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현이와 덕이 . . . . 8회 일치
         {{밴드 정보
         * 2014년 8월 5일 [[인디밴드]] [[에이템포]] 디지털 싱글 《청춘》발표 : 장덕 작사 · 장덕 노래 <얘얘> [[리메이크]] 수록
         === 1980-83 : 유학생활, 결혼, 가족밴드 리 패밀리 결성 ===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장덕은 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승언과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 같은 것 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10월 17일 미국에 온지 1년만에 장덕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승언과 [[내쉬빌]]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리 패밀리의 일원으로서(밴드에서 장덕은 음악적 리더 역할을 하였고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한인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그녀는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게 된다.
         * 2014년 8월 5일 [[인디밴드]] [[에이템포]] 디지털 싱글 《청춘》발표 : 장덕 작사 · 장덕 노래 <얘얘> [[리메이크]] 수록
  • 양예나 . . . . 6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유용근밴드리즈)]
         [include(틀:유용근밴드리즈 멤버)]
         ||<bgcolor=#FF69B4><:>'''{{{#ffffff 소속그룹}}}''' ||<(>[[유용근밴드리즈]] ||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태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영]],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식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분류:DSP미디어]][[분류:유용근밴드리즈일원]][[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분류:2000년 출생]][[분류:2015년 데뷔]]
         [[분류:유용근밴드리즈 출신]]
  • 최현진 (드러머) . . . . 6회 일치
         | 관련활동 = [[바닐라 유니티]], [[바세린 (밴드)|바세린]], [[서태지 밴드]]
         '''최현진'''은 [[서태지 밴드]] 소속의 [[드럼셋|드러머]]이다. [[2002년]]에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1집 앨범 《The Portrait Of Your Funeral》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서태지 밴드와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 윤철종 . . . . 5회 일치
         권정열과 윤철종 둘 다 [[구미시]] 출신인데, 알고 보니 구미 [[현일고등학교]] 밴드부 매드펄스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밴드 '해령'에서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권정열은 그대로 보컬이었지만 윤철종은 베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이 둘도 그때 같이 군대 갔다 왔다] 밴드가 해체되자, 둘은 '''색다른 밴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구광역시|대구]]로 [[상경]]하게 된다.
         2010년 3월 28일 자체제작해 발매한 [[EP]]앨범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냥 보통의 홍대 인디밴드가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 장재인 . . . . 5회 일치
         지향하는 음악은 포크 음악이며,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고.. 첫 자작곡은 7살 때 쓴 동요고, 자신이 '노래다운 노래를 만든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의 자작곡은 중3 때 처음 썼다.[[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00915175413774|#]] 실용음악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호원대 싱어송라이터과에 합격하면서(교수 [[정원영]] 현재 정원 '''5명'''...) 본가인 광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부터 클럽 등에서 '''재인(才人)'''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재인밴드를 결성,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까지 활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후에 '[[이승철]]이 홍대클럽에서 장재인을 봤다.(이승철이 3차예선 시작할 때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한 게 원인)', '사실 제작진이 장재인을 홍대에서 섭외해 왔다.' 라는 --기본--기초적인 루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 [[KBS]]에서 방영한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 시즌1 우승밴드인 [[톡식]]과는 지인이자 음악적 동료인 관계라고 한다. 16강전때는 톡식을 응원하러 슬로건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분류:강진군 출신 인물]][[분류:밴드 보컬]] [[분류:1991년 출생]][[분류:한국 여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10년 데뷔]]
  • 김광석 . . . . 4회 일치
         | 관련활동 = [[동물원 (밴드)|동물원]],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상경하여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 (밴드)|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밴드)|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 한상원 . . . . 4회 일치
         | 소속팀 = 한상원밴드
         | 관련활동 = 쉼, <br /> 석기시대, <br /> [[김태화]]밴드, <br /> 코리아 슈퍼세션, <br /> [[긱스 (6인조 음악 그룹)|긱스]]
         * [[2011년]]: [[탑밴드|탑밴드 시즌 1]] ([[KBS 2TV]], 심사위원으로 출연)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3회 일치
         2006년 [[허밍 어반 스테레오]] 2집의 객원보컬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인디 밴드 아키버드의 1집 《All Allowed》로 데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4&aid=0000130133 '핫'한 레이디제인! 그녀가 궁금하다.], 《스포츠경향》, 2010년 11월 8일</ref> 300 대 1의 경쟁률을 극복하고 발굴되고 나서 2009년 아키버드에서 탈퇴했다. 동년 [[홍대 (지명)|홍대]] 유명 실력파 밴드 [[티라미스 (음악 그룹)|티라미스]]의 멤버로 디지털 싱글 ‘슈팅스타’를 발매하였다. 이때 홍대에서의 많은 활동으로 ‘홍대여신’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남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반’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영주시 . . . . 3회 일치
          * 시내 서쪽을 흐르는 서천에는 교량 4개(서천교, 영주교, 가흥교, 제2가흥교)가 있는데 일부 다리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LED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강변에는 [[제방]]과 둔치가 있으며 시민들은 이곳을 뚝방(...)이라고 부른다.[* 영주 출신의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곡 ‘가끔씩(우지윤의 보컬 스틸)’에서 언급된다.]둑 위에는 작은 길이 있어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으며 시민회관/주공아파트 주변에는 운동 시설과 쉼터, 식당 등이 있다. 제민루부터 경북전문대까지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철에 [[벚꽃]]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안지영]] :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참고로 슈스케 당시 영주시를 알렸다고 영주시장에게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 [[우지윤]] :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 한성호 . . . . 3회 일치
         중문과 재학시절 대학교수를 꿈꾸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명지대 음악 밴드‘화이트홀스(백마)’였다. 그는 교내 밴드동아리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 자신의 회사(구 F&C뮤직)에 소속되어 있는 FT아일랜드(이홍기), 씨엔블루(정용화)가 출연하고 있는 SBS 《[[미남이시네요]]》 7회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유일하게 버즈에 이어서 아이돌밴드를 만든 FT아일랜드, 씨엔블루를 무서운 신인으로 만들어 각종 1위, 상위권 차트를 휩쓸었다.
  • 허준 (음악가) . . . . 3회 일치
         '''허준'''([[1974년]] [[9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음악가이다. [[YB (밴드)|YB]]의 [[기타]] 연주자로 많이 알려져있다.
         [[1974년]] [[9월 17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93년]] [[영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0년]] 6월 [[유병열]]이 [[YB (밴드)|윤도현 밴드]]를 떠나자 그 자리를 메웠다. 허준이 참여한 첫 YB 음반은 라이브 1집이다.
  • 문문 . . . . 2회 일치
         음악 활동 이전엔 본래 [[직업군인]]이었으며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하다가, 20대 중반에 음악에 대한 꿈 때문에 전역을 하고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에 '저수지의 딸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계에 진입했으나 밴드 활동이 잘 되지 않자 잠정 해체되고, 그 후 2016년 7월에 싱글 앨범 [Moon, Moon]으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물감'''과, [[비행운(노래)|비행운]] 등이 있다.
  • 부산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올라이즈 밴드]] - 남구(부산)
  • 신애라 . . . . 2회 일치
          | 소속사 = TKC PICTURES <br \> 밴드 오브 아티스트 에이전시
         * [[2001년]] [[SK브로드밴드]] 시외전화
  • 이서진(배우) . . . . 2회 일치
         || SK브로드밴드 || SK브로드밴드 || 통신사 ||
  • 정인숙 (1945년) . . . . 2회 일치
         당시 그를 목격한 연예기자 정홍택의 회고에 의하면 '그 날도 나는 남산 중턱에 있는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 갔다. 밤 8시 반쯤 되었을까? 나는 만나기로 한 일행보다 먼저 도착했고 클럽 안에서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자 한 분이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집에서 카운터 앉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여인과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가까이 보니 아주 미인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내가 카운터에 앉자 그 여인은 나한테 술을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이런 경우 술을 권하는 사람은 대체로 남자 쪽이 아닌가?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내 느낌으로는 그녀에게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인데다가 우울한 분위기였다. 더욱 더 나를 묘하게 만든 일은 그녀가 밴드에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한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는 ‘릴리스 미(Release Me)’였다. 이것은 영국의 엥겔버트 험퍼딩크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고 그 당시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고 있었다. “나를 좀 놔 주세요. 떠나갈 수 있게 놔 주세요.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나한테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답니다. 당신의 입술은 차갑지만 그이의 입술은 따뜻합니다.” 이런 가사 내용이다.<ref name="han01"/>
  • 주현미 . . . . 2회 일치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그럼에도 역대급 보컬리스트를 논할 때 발라드나 알앤비 위주의, 소위 디바 스타일 가수들보다 비교적 언급이 적을 수도 있었는데 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낮은 시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현미는 락밴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클래식, 락, 알앤비,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저 트로트의 여왕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넘사벽급의 실력과 표현력을 가진 가수.'''
  • 최재혁 (음악가) . . . . 2회 일치
         '''최재혁'''([[1975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록 밴드 [[옐로우 몬스터즈]]의 드러머이다. 1998년 [[델리스파이스]] 정규 2집 《[[Welcome To The Delihouse|델리의 집으로 오세요]]》로 데뷔했으며, 2006년 [[델리 스파이스]] 정규 6집 《[[Bombom|BomBom]]》이 발매될때까지 [[델리스파이스]]의 드러머로 활동하였다. 2005년에는 [[윤준호 (음악가)|윤준호]], [[고경천]]과 함께 [[오메가 3 (음악 그룹)|오메가 3]]를 결성해 활동했다. [[2010년]] 록 밴드 [[옐로우 몬스터즈]]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2회 일치
         '''프라이머리'''(Primary, {{본명|최동훈}}, 1983년 1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DJ 겸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 [[다 크루|Da Crew]]의 레이블 [[가라사대]] 소속이었으며, 이후 [[빅딜 레코드]], 타일뮤직을 거쳐 현재는 [[아메바컬쳐]]의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이머리 & 마일드 비츠 (Primary & Mild Beats), [[프라이머리 스쿨]] (Primary Skool), 프라이머리 스코어 (Primary Score) 등 여러 프로젝트 그룹으로도 활동하며 밴드 음악을 베이스로 한 힙합 장르를 기본으로 재즈, R&B 등을 섞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빅딜 레코드]]를 동료 뮤지션들과 설립해 [[데드피]]의 《[[Undisputed LP]]》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힙합씬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을 수상한 [[가리온]]의 《[[무투 (음반)|무투]]》, [[다이나믹 듀오]]의 《[[Band of Dynamic Brothers|죽일 놈]]》, [[슈프림팀]]의 1집 《[[Supremier]]》 등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Drunken Sailor . . . . 1회 일치
         [[https://youtu.be/qGyPuey-1Jw|캐나다 밴드인 아이리시 로버즈가 부른 버전(유튜브)]]
  • MC메타 . . . . 1회 일치
         그리고 굉장히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무까끼하이[* 대구 사투리, 대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희귀한 사투리라 한다. 뜻은 뭔가 고지식하고 뭔가 무식해 보이는 어떤 사람 혹은 상황이라 한다.]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21분간 랩으로 사투리 나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을 합친 개념인 재즈합이라는 프로젝트 밴드 활동도 하고, 프로듀서 [[돕플라밍고]]의 'Hellevator'에서도 새 스타일을 시도 하였고, 2016년 최근에 발표된 Heritage 싱글에서는 끝말잇기 랩을 시도하기도 했다.
  • Y2K 버그 . . . . 1회 일치
         [[http://news.joins.com/article/15344931|중앙일보 - 지난 신문 보기-1999년 12월 31일 7면 - 'Y2K 종말론'과 꽃미남 밴드]]
  • 김갑수(배우) . . . . 1회 일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 김민교 (가수) . . . . 1회 일치
         김민교는 [[1989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록 음악]] [[음악 그룹|밴드]] "옥슨(Oxen)"의 보컬리스트로 참가하여 《청개구리》라는 곡으로 금상 수상하여 첫 데뷔하였다.
  • 김중혁 . . . . 1회 일치
         음악, 영화, 스포츠, 그림을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사 만큼이나 작가의 경력 또한 화려한데,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밴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흑임자~~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칼럼도 쓰고, 웹툰 작가로도 활동했다니[* 그림 솜씨가 출중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편이다. <펭귄 뉴스>, <뭐라도 되겠지>, <미스터 모노레일>의 표지도 직접 그렸다.] 그야말로 문학계의 [[팔방미인]](...)
  • 김형철 (가수) . . . . 1회 일치
         1985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블루스 록 가수 첫 데뷔하였고 [[1988년]] [[신화창조 (음악 그룹)|신화창조]]라는 록 밴드에서 본격 록 음악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1년]]에는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이후 영화배우로도 활약을 하였다.
  • 김혜옥 . . . . 1회 일치
         * [[2002년]] [[MBC]]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 (드라마)|네 멋대로 해라]]》 ... 밴드 보컬 연정의 어머니 역
  • 박석민 . . . . 1회 일치
          * '''브콜돼''':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의 몸매(...)와 함께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로 불린다.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며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로콜리 너마저|브로콜리 돼지 너마저]]~~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외부링크}}}''' ||<(> [[http://blog.naver.com/gumibsj1778|블로그]] [[https://www.facebook.com/gumibsj1778|페이스북]] [[http://band.us/#!/band/59133056|밴드]] ||
  • 보나 . . . . 1회 일치
         '''유용근밴드리즈15의 아름다운 비주얼 甲'''
  • . . . . 1회 일치
         곡마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지만 뷔가 단연 독보적. 특히 [[헤어밴드]]나 [[반다나]]를 하면 뚜렷한 이목구비가 더 돋보인다. 얼굴같은 경우도 차이가 매우 큰데 앞머리를 내리면 예쁘게 잘생겼다, [[인형]]같다는 말이 많지만 앞머리를 까면 남자답게 잘생겼다, [[혼혈]]같다는 말이 많다.
  • 서유리 . . . . 1회 일치
          * 팔도방랑밴드 - 게스트(10화)
  • 손승락 . . . . 1회 일치
         온몸을 던지는 다이나믹한 투구폼과 등판 시 울려퍼지는 [[퀸(밴드)|Queen]]의 명곡, [[News of the World|We will Rock you]]가 트레이드 마크. 별명이 많은 편인데 사실 좋은 쪽으로의 별명은 적다. 그나마 좋은 별명이 손승'''LOCK'''[* 스펠링이 다르다. 손승Lock이라고 한건 Lock이 '잠그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We Will Rock You는 그냥 발음이 같아서(...)로 추정된다.], [[락앤락]][* 실제로 최훈은 손승락을 대체로 [[락앤락]]으로 그린다(...). 간혹 블론세이브 등 좋지 못한 경기를 펼쳤을때에는 '내용물 유출' 드립이 터지기도.]정도이며 나쁜 쪽으로는 손든락[* 201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블론 세이브 때 타구가 중견수 플라이가 될 줄 알고 손을 치켜올려든 모습에서 유래.], 손트니코바[*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금메달 획득 실패를 패러디해 골든글러브 수상을 비꼬는 별명이다. ~~그래도 [[임태훈(야구선수)|임태운]]보다는 훨씬 낫다~~], 손퇴물[* 사실 손퇴물이라는 별명은 손승락이 10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타팀으로 트레이드 될까봐 걱정하던 혀갤러들이 팔리지 말라는 뜻에서 지어준 별명으로서 좀만 못해도 장난스럽게 던지는 별명에 가까웠는데 14시즌에 별명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 별명은 잘 지어야 된다. [[유한준|우타거포 분유신]]이 좋은 예.~~ 15시즌에는 더욱 더 심각한 퇴물로 거듭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FA 협상을 위한 눈속임일 뿐~~ ], 승락극장[* 엄밀히 말하면 이 별명은 [[타카츠 신고|이 선수]]의 별명에서 유래, 즉 깔끔한 세이브를 하지 못하고 주자를 내보낸 채로 세이브를 거둔다는 것에서 나온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된 말이다. 다만 2017년 현재는 어느 롯데 팬이 '''해피엔딩 전문 상영관'''이라는 배너를 들고 오면서 아예 하나의 별명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 SUN승NOT[* 투구폼을 바꾼 이후로 유독 일요일에 실점이 많고 블론세이브가 자주 벌어지자 붙여진 별명이다],족발극장 등이 있다. ~~[[키비]]닮았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가 애드립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의외로 맛의 베이스가 탄탄하며 그걸 기반으로 연주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뛰어난 재즈 밴드 같다고 평한다. 이런 완성도 높은 요리에 비하면 자신들의 조리는 미치지 못하고 맛을 볼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 영덕군 . . . . 1회 일치
         ||<bgcolor=#F781F3> {{{#FFFFFF '''링크'''}}} ||<bgcolor=#F8E0F7> [[http://www.yd.go.kr/|홈페이지]][[https://www.facebook.com/love4ydpage/|[[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페이스북]][br][[https://twitter.com/love4yd|[[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트위터]][[http://blog.naver.com/ydcounty|[[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영덕군 공식 블로그]][br][[http://band.us/@yeongdeokgun|[[파일:BANDico 6.x.png|width=15]]네이버 밴드]] ||
  • 유미(가수) . . . . 1회 일치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이덕진 (가수) . . . . 1회 일치
         밴드 ZERA(제라) 2012년 <STOP>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 전인권 밴드 “눈눈눈눈” 뮤직 비디오
  • 이선희 . . . . 1회 일치
         * [[1984년]] [[삼양식품]] 포장마차 (남성 그룹 [[송골매 (밴드)|송골매]]와 함께 출연)
  • 이승엽 . . . . 1회 일치
         * [[2018년]] [[SK브로드밴드]] 옥수수 ([[김제동]]과 공동출연)
  • 이정길(영화배우) . . . . 1회 일치
         이런 무게감있는 역 전문배우가 된 것은 1984년 MBC에서 ~~한국판 미토 코몬 시리즈를 표방한~~ '암행어사'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면서부터이다. 이때 따르는 방자 역을 한게 [[임현식]]. 올드팬들은 오프닝 화면에 마패가 나오던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이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후 이정길 하면 신뢰감있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삼부파이낸스라는 회사가 야심차게 투자사업을 시작하며 내세운 광고모델도 이정길이었는데, 투자회사의 모델로는 적격이었다. 당시 삼부는 부동산이나 연예 매니지먼트('이미 슬픈 사랑'으로 유명한 밴드 YADA도 삼부엔터테인먼트)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벌렸으나 경영진의 [[병크]]와 IMF 등 잇다른 악재로 이래저래 사업이 망했다. 이후 회사와 투자가 사이에서 이정길에게 각종 소송을 하면서 이정길의 흑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 [[김원희]]와 애정연기를 하는 코믹 로맨스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다.
  • 장항준 . . . . 1회 일치
         * 2015년 [[SK브로드밴드]] B tv 콘텐츠연구소 '스마트 무비' 편
  • 조성모(가수) . . . . 1회 일치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했는데 초반부에 실력자와 음치를 같은 비율로 탈락시켰으나 마지막에 결국 실력자를 탈락시켜 음치와 듀엣했다. 이 때 신인밴드의 보컬을 구할 필요가 있어서 출연했는데.(...)[* 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연예인 음치 판정단을 너무 믿은 게 문제였다.] 그래도 마지막에 탈락시킨 실력자를 섭외해 보컬을 구하기는 했다.
  • 최민환 . . . . 1회 일치
         '''최민환'''([[1992년]] [[11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드러머, 배우이다. 현재 밴드 [[FT아일랜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다.
  • 최정호 (성우) . . . . 1회 일치
         * 2001.03.18 김인숙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 최희준 (가수) . . . . 1회 일치
         1964년 2월 제대 후 《맨발의 청춘》<ref>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 (1964년 영화)|맨발의 청춘]]》의 주제가였다.</ref>, 《하숙생》<ref>1965년, 작사가 김석야 원작의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며 1966년 [[신성일]], [[김지미]] 주연으로 영화화됐다.</ref> 등을 발표해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1964년에는 명문대 출신 가수들의 밴드인 "포 클로버즈"의 보컬로 활동했다.
  • 케이블 타이 . . . . 1회 일치
         [[케이블]]을 묶어서 정리하기 위한 [[플라스틱]] 밴드. 주로 복잡한 컴퓨터나 가전제품 케이블을 묶어서 정리하는데 사용한다. 잘못 사용하면 정리하는게 아니라 더 복잡해지니 주의. [[끈]]이나 [[매듭]]보다 묶기가 간편하고, 매듭보다 훨씬 풀리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편리한 도구.
  • 타루 . . . . 1회 일치
         일본 팝밴드 [[스윙잉 팝시클]]이 보너스 트랙 제외 전곡을 프로듀싱했다<ref>{{뉴스 인용|제목=타루, 28일 정규 1집 ‘TARU’ 발매|url=http://www.dipts.com/news/index.html?mode=view&top_id=A&page=1&cate1_id=15&cate2_id=126&issue_id=&number=17282&text=|출판사=DIP 뉴스|저자=류진영 기자|쪽=|날짜=2009-08-28|확인날짜=2009-12-11}}</ref>.
  • 함중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출생이며 한때 [[경상북도]] [[포항시|포항]]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경상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성장한 그는 1971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 첫 데뷔하였으며 이후 1977년 [[함정필]], [[정동권|최동권]] 등과 함께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도 입상을 한 바 있고 이후 1978년 1집 발표하는 등 록 음악 밴드 활동도 병행을 하였는데 그 후로도 1988년 시절까지 [[윤수일]], [[조경수]], [[유현상]], [[박일준]] 등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록]] [[가수]] 활동으로 인기를 구가한 그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작품이 공전 히트를 기록하였다.
  • 홍대광 . . . . 1회 일치
         * 《2016 춘천 밴드 페스티벌》 (송암레포츠타운, 2016년 5월 14일)
  • 홍서범 . . . . 1회 일치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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